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우리는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그중에서도 ‘100억 광년 이상 떨어진 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별빛은 무려 100억 년 전, 그러니까 태양계조차 형성되기 전 시기의 우주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우리 눈앞에 도달한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단순히 망원경이 좋아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빛의 속도, 우주의 팽창, 중력렌즈와 같은 자연법칙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한 덕분에 우리는 이 먼 거리를 뛰어넘는 ‘우주의 과거’를 관측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원리와 현상들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보며, 인류가 어떻게 그 먼 우주의 빛을 포착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별빛은 과거에서 온 메시지: 빛의 속도와 광년 개념
우주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바로 ‘빛의 속도’입니다. 빛은 진공 상태에서 1초에 약 30만 km를 이동합니다. 이것은 지구를 1초에 7바퀴 반을 도는 속도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주의 규모 앞에서는 이조차도 느리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거리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광년’이라는 단위를 사용합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이동하는 거리로 약 9조 4,600억 km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100억 광년’은 무려 946경 km 이상에 해당하는 거리입니다. 만약 어떤 별에서 방출된 빛이 100억 광년의 거리를 지나 지구에 도달했다면, 우리는 지금 그 별이 100억 년 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별이 현재 존재하고 있는지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미 소멸했을 수도 있고, 초신성 폭발을 통해 다른 형태의 천체로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별이 방출한 빛은 계속해서 우주를 가로질러 움직였고, 지금 우리가 그것을 포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별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관측을 넘어서 시간여행과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망원경을 통해 우리가 관측하는 것은 현재의 우주가 아니라 과거의 우주입니다. 가장 가까운 항성인 프록시마 센터 우리조차 4.24광년 떨어져 있으며, 그것 역시 우리가 관측하는 순간의 모습이 아닌 4년 전의 모습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지금'이 아닌, '그때'의 우주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2. 중력렌즈 효과: 우주가 만들어주는 자연의 확대경
100억 광년 이상 떨어진 별은 일반적인 망원경으로는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어떻게 그 빛을 포착했을까요? 그 해답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제시된 ‘중력렌즈 효과(Gravitational Lensing)’에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질량이 큰 물체는 그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만듭니다. 마치 고무판 위에 볼링공을 올려놓으면 주변이 움푹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왜곡된 시공간을 지나가는 빛은 직선이 아닌 곡선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이 과정에서 빛이 증폭되거나 방향이 바뀌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즉, 지구와 먼 별 사이에 거대한 은하나 은하단이 존재할 경우, 그 은하의 중력이 렌즈 역할을 하여 뒤쪽에 있는 별의 빛을 휘게 하고, 그 빛을 증폭시켜 우리가 관측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중력렌즈는 자연이 만든 우주의 망원경인 셈입니다. 우리가 100억 광년 떨어진 별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중력렌즈 효과 덕분에 빛이 우리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증폭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2022년 허블 우주망원경이 발견한 ‘에렌델(Earendel)’이라는 별이 있습니다. 이 별은 무려 129억 광년 떨어져 있으며, 중력렌즈 효과 덕분에 그 미세한 빛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에렌델은 빅뱅 이후 약 9억 년 후에 존재했던 별로, 지금까지 인류가 관측한 별 중 가장 오래된 별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측은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이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별의 온도, 크기, 질량, 화학적 구성 등을 알아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우주 초기 별의 형성과 진화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중력렌즈는 단순히 시각적 확대 기능을 넘어, 우주와 시간의 벽을 넘는 창으로 작용합니다. 과거에는 전혀 관측할 수 없었던 천체들이 이 효과를 통해 하나둘씩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 많은 고대 별과 은하의 빛이 과학자들에 의해 포착될 것입니다.
3. 우주의 팽창과 적색편이: 별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진짜 이유
빛의 속도와 중력렌즈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100억 광년 떨어진 별을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우주의 팽창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1929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모든 은하들이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관측했습니다. 그리고 그 멀어지는 속도는 은하가 멀리 있을수록 더 빠르다는 법칙, 바로 ‘허블의 법칙(Hubble’s Law)’으로 정리됩니다. 이 발견은 우주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빅뱅 이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빛의 관측 방식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먼 은하나 별에서 오는 빛은 우주 팽창에 의해 ‘적색 편이(Redshift)’ 현상을 겪게 됩니다. 이는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현상으로, 도플러 효과와 유사합니다. 구급차의 사이렌이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 소리가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빛도 우주 팽창으로 인해 파장이 변화하며, 더 붉은색에 가까운 빛으로 변합니다. 천문학자들은 이 적색편이의 정도를 통해 그 천체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고, 결국 100억 광년 이상 떨어진 별도 이 방식으로 감지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주 배경 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는 빅뱅 이후 약 38만 년 후에 형성된 빛으로,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미세한 복사 에너지입니다. 이 배경 복사는 우리 우주의 나이와 구조, 밀도, 온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우주의 지문’과도 같습니다. 현대 우주론에서는 이 CMB 분석을 통해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100억 광년 떨어진 별을 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빛이 빠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고, 그에 따라 빛의 파장이 적색으로 이동하며, 중력렌즈로 인해 그 빛이 증폭되고, 현대 천문학 기술로 이를 포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조건이 기적처럼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수십억 년 전의 우주를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100억 광년을 넘어온 별빛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책이자 우주 일기입니다. 그것은 먼 옛날, 우주의 다른 구석에서 발산된 작은 광자가 우주의 팽창과 중력렌즈를 통해 우리에게 도달한 감동적인 여정의 결과입니다. 인류는 이 빛을 통해 과거를 보고, 존재하지 않는 것조차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비롯한 차세대 관측 장비들이 더욱 먼 우주의 빛을 포착할 때, 우리는 우주 초기의 별, 은하, 그리고 생명의 가능성까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별을 본다는 것은 단지 천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기원을 응시하는 것입니다. 그 작은 빛 하나하나에 우주의 역사, 자연의 법칙, 그리고 인간의 호기심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